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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생 및 파산

불행의 시작, 11억짜리 아파트가 하루아침에 경매로.....

by 아름다운사람인 2025. 1.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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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불행에는 인간관계가 있다.

 

사람을 잘 만나는것 못지 않게 중요한게, 사람을 볼 줄 아는 안목이 아닌가 싶다.

20년동안 피땀흘려 일했던 직장을 잃었던 때도, 남들 다 받는 월급을 혼자 못받았던때도

크리스마스 이브였다.

 

보통의 회사들은 근속년수 20년이 넘어가고 부장에서 이사로 가는 길목, 40대 중반에서 50대로 가는 길목에서 권고사직을 하곤 한다. 나도 그랬다. 연봉이 7천이 넘어서고 임원이 되기 전 바로 그 시점.....

 

그러기에 회사에서 후배를 잘 키우는 일은 곧 나의 자리가 없어질 수도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막막했다. 대학교 4학년 2학기때 입사해서 평생을 함께 했던 회사에서 밀려나니 당장 눈 앞이 캄캄했었다.

 

그러던 차에 회사업무로 알게 된 업체를 통해 중국에 진출해 보자는 제안을 받았다. 한참 중국 여러곳에서 한류붐과 함께 한국관을 만드는게 붐이 일어났었던 시기였다.  20여년을 패션업체에 몸담다 보니 아는 패션업체들도 많고 의류브랜드에 대해서 다양하게 알고 있어서 나에게 적합한 것 처럼 보였다.

 

총6억원을 투자를 받아 의류업체 12곳에서 물건을 사입해서 중국 심양에 있는 공업전람관 지하 600평에 한국브랜드 멀티아울렛을 오픈했다.  우리들의 바램과 달라 중국관리들과의 업무협력이 쉽지 않았고 장사도 잘 되지 않았다.

 

장사가 안되니 결국은 물건을 들고 여기저기 행사를 다니게 되었다. 한국에 있을때 회사에서 하는 패밀리세일과 코엑스나 AT센터등에서의 대관행사등을 진행해 왔던터라 중국이라고 다를건 없다고 생각했었다.

 

그렇게 시작했던 행사가 롯데백화점 심양점, 완다아울렛, 심양신세계백화점, 심양한인협회와의 협업행사등 가릴게 없었다. 그 당시에는 한국브랜드를 중국에 뿌리 내려보겠다는 일념도 있었고 중국 이곳저곳을 다녀볼 수 있다는 점도 좋았던것 같다. 그렇게 가게 된 곳이 두만강지나 훈춘에서부터 진시왕릉이 있는 시안까지....

 

비자 때문에 한달에 한번은 한국에 왔다가 다시 중국으로 넘어가는 1년여간 와! 이정도 하면 못해볼게 없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심양공업전람관

 

1년여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투자금이 더이상 들어오지 않다 보니 더이상 중국에 있을수가 없게 되었다. 그 이후로는 지인들을 통해 소개받은 회사에서 이일저일 하다보니 몇년의 시간이 흘러가 버렸다.

 

그러다가 지인의 소개로 제조업체의 대표이사가 되어 보지 않겠냐는 제안이 들어왔다. 집에오는 전철안에서 처음 전화를 받았을때만 해도 CFO를 맡아달라고 했었는데 조금 후에 다시 전화가 와서는 대표이사를 맡아달라는 요청을 했다. 좀 생각해 보고 알려주겠다고 하고는 집에 와서 가족들과 상의도 했었는데 대표이사가 가지는 책임이 아파트를 날리고 개인파산까지 맞이하게 된 결과로 이어질 줄은 그때는 몰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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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회사의 운영과정에서 부도에 직면한 후 기업회생과 개인파산을 진행할 수 밖에 없었던 이야기를 해보고자 합니다. 평생을 살아오면서 기업회생과 개인파산을 직접 겪게 될 줄은 몰랐었기에 그 과정이 너무도 고통스럽고 힘든 과정의 연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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